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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의견

독립군중에 김규식장군만큼 많은 전과를 올리신 분은 없었다

조인스 계정 p******4 2020-08-12 AM 10:30:03 조회 103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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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 교수는 명심하시요..

당신은 봉오동, 청산리전투 밖에 모릅니까?

그당시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한 사람은 김좌진도 홍범도도 아닌 김규식장군입니다..

제발 만주가서 발로 뛰면서 제대로 연구를 하세요..제대로 연구를 하시라구요..

김규식장군에 관해서는 왜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는겁니까? 그러고도 당신들이 역사학자입니까?


유튜브에 검색하면 김좌진 홍범도 등은 많이 소개되어 잇지만 노은 김규식 장군에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이게 말이 되냐구..신주백 당신같은 가짜역사가들이 게을려서 그런거야..부끄러운줄 아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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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장군에 관한 봉우선생님의 말씀('세상속으로 뛰어든 신선' 중에서 p300)

"나는 당시 만주독립무장단체였던 북로군정서의 

노은 김규식(金圭植, ? ~ 1931, ㅡㅡㅡ임정요인 우사 김규식과는 다름) 장군 밑에서  일본군과 싸웠는데 

부대가 있던곳은 장백산 근처였어. 

산위로 물이 나와서 거기서 유격대원들이 목욕을 하곤 했지..


이 김규식 장군 이야말로 위대한 독립투사였고 인격자였어. 

당시 만주독립 투쟁에서 일본군이 제일 두려워하던 인물이 바로 이분이었지.  

백번 싸우면 백번을 늘 이긴다 하여 '상승장군(常勝將軍)'이란 별명이 붙었어. 


고종황제가 군대 해산 전 비밀리에 밀명을 띄워, 거느리고 있던 군대와 같이 만주로 보냈다는 얘기도 있지. 

하여간 이분이 김좌진 장군이나 이범석 장군보다도 훨씬 일찍 독립전쟁에 뛰어들었고 

실제 전과도 가장 많이 올린 분이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묻혀있다가, 

지난 1990년에야 만주에 살던 손자가 귀국하여 훈장을 받았다고해. 

김규식 장군이 이제야 국가에 표창이 되었어..(울먹이며 말씀을 이으셨다.) 

만주에 가야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가 나와. 

그걸 연구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부분이 밝혀지질 않고 있어///


(참고로 봉우선생은 젊었을때 독립군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여러차례 싸웠다네요..김규식장군은 봉우선생의 아버님과 친분이 잇는 관계인데다 봉우선생이 외아들이라서 김규식 장군이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독립군활동을 만류시켰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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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는 고난과 시련의 땅이었다. 


특히 근대사를 돌이켜볼 때 그러하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만주 이민은 1920년~30년대에 이르러 집단적으로 진행되었다. 

즉 일제의 가혹한 수탈정책에 못이겨 정든 고향을 떠나 남부여대로 온 것이고, 

다른 부류로는 고국에서 반일투쟁을 하다가 상황이 각박해지자, 독립투쟁의 무대를 옮겨 

식솔을 이끌고 떠나 온 사람들이다.


  이민 초기에는 봄, 여름에 떠나온 채로 입고 온 홑옷 한거풀만 입고 첫 겨울을 맞아 솜옷이 없어 

얼어죽은 사람도 많았으리만큼 그들의 생활상은 극빈의 맨주먹이었다. 

그래도 중국인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황량한 벌판위에 그들은 피와 땀을 쏟고, 

뼈까지 묻어가며 오늘날의 연변을 개척한 것이다.


  연변지방 8개현의 지명을 보라. 

일제하 만주 무장독립운동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지명들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능히 짐작이 가리라. 그 척박한 개척이민의 와중에서도 해외동포중 가장 열렬히 조국독립투쟁을 전개함에 

신명을 다한 사람들이 바로 이곳 동포들이었다. 


그들의 피와 한숨과 눈물이 담긴 꼬깃꼬깃한 지폐들이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군자금으로 제공되었으며, 

연변동포 중 100명에 2명꼴로 항일순국열사들을 배출하였던 것이다.


  철기 이범석 장군의 회고록 『우등불』에 나타나듯이, 

당시 우리 만주 독립군이 철저한 게릴라 전법으로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둔 것도 

이들 재만 동포들의 헌신적인 협조와 뒷바라지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산골짜기에서 저 산골짜기로 하룻밤에 이백리 이상을 속보(速步)로 강행군하여 적들을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지친 병사들을 맞이하여 우리 동포들은 미리 지어논 밥 먹이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재워주고, 

부상자들을 치료했으며,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나와 병사들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는 등의 

실로 눈물겨운 헌신을 다했던 것이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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