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주요 메뉴 영역

본문 영역

차이나는 클라스
본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JTBC에 있습니다.

23/6/18 종영 |  https://tv.jtbc.co.kr/jtbclecture

시청자 의견

정의론 강의에서 김형철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오류...

조인스 계정 김***** 2017-04-17 AM 3:08:16 조회 745 추천 10

 두갈래길의 철도에서 한방향은 100명이 있고 한방향에는 1사람이 있는데 내가 만약 철도 운전사라면 어느방향으로 결정할 것인가? 라는  김형철 교수님의 질문은 오류가 있습니다.

너무나 의도된 질문을 하시는데..한사람쪽으로 방향을 결정한다면 공리주의 입장이고 100명을 향해서 간다면 칸트의 의무론적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한사람을 죽이면 100명을 살릴 수 있으니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즉 공리주의 관점으로 보이겠죠. 그런데 100명을 죽이는 방향으로 가는게 칸트의 의무론적입장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건 비유가 잘못된 것입니다.  칸트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수단으로 대하지마라..인간자체의 생명윤리를 공리주의처럼 수치화 하지 않습니다.즉 모든 생명의 가치는 같다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목숨과 수백명의 목숨은 결국 같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미 김형철 교수님은 목숨을 수량화해서 한사람의 목숨과 100사람의 목숨이 다르다라는 전제로 말씀합니다.

칸트의 입장이라면 똑같이 1명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게 철학적으로 합당한거죠. 왜? 이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순수이성 즉 선험적 판단을 그대로 실천하는 실천이성의 명령을 따르는 정합적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덕적 격률이고 준칙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밴덤의 철학하고 비교하는거 자체가 오류죠. 같은 공리주의 철학자 흄하고 비교해야죠..사회적 공감.. 이타심..사회적으로 공감을 얻는 행동이 바로 도덕이다.

누가 보아도 100사람을 죽이는 거보다 한사람을 죽이더라도 희생을 줄이는 것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행동 아닙니까?

재미있는 가정과 전제로 수업을 하셨지만 누구에게나 목숨은 하나고 그 생명가치는 동일합니다. 100만며의 목숨이라도 결국 한사람의 목숨의 합계일뿐 결국 모두가 한사람의 생명입니다.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가스실에 버튼을 누른 사람은 결국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당했죠. 그당시 가스살포를 하는 버튼을 누른 사람은 저는 그저 시키는 데로 했을 뿐입니다. 제가 군인이기 때문에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하지만 정의는 당신이 상관의 명령을 거부했어야 한다. 그것이 윤리고 도덕적인 행동이다..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마이클센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책에서도 결국 다수가 살기위해서 소수를 희생했을때..그 어떠한 이유로도 소수가 희생당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의무도 없다..라고 ..김형철 교수님은 철학과 나오신 분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도 제대로 읽지 않으신거 같습니다. 철학도 전공이 다 다르다고 하지만.. 방송에 나오셨으면 최소한의 준비는 하셧어야죠.. 칸트는 100명을 죽여서라도 목적지까지 가라고 한게 절때 아닙니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읽고 해석하셨다면 칸트가 선험적판단을 형이상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했는지 그렇다면 정의라는 관점에서 허떤 선택을 했는지 쉽게 설명하셨어야죠. 칸트의 선택이 의무론적이 아니라 순수이성 비판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설명햇어야 합니다. 

두갈래길의 선택이라는 것이 마치 운전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그것이 모순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선택은 두갈래 철도길이 정해진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선택이 아닙니다.

이미 선택이전에 두개의 길이 정해진 것이죠. 철학적으로 선택은 정해진 것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아가 결정하는 것이죠. 이게 본질적이 선택의 의미고 형이상학적인 칸트가 말하는 선택입니다.

엄마를 죽이면 아버지가 살고 아버지를 죽이면 엄마가 산다..둘중 하나를 선택해라..칸트의 입장에서는 이건 선택이 아닙니다. 선택이라는 본질이 무엇인가? 이게 순수이성비판 아닙니까?

정의를 칸트의 입장에서 설명하실거면 정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먼저 말씀하셧어야죠.. 

SHOPPING & LIFE

하단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