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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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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18 종영 |  https://tv.jtbc.co.kr/jtbcl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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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강 한명기 교수] 조정인님 질문 - 한명기 교수님, 최명길에 대해서 질문 있습니다

2020-03-24 AM 10:57:19 조회 383

조정인님의 질문에 대한 강연자 한명기 교수님의 응답입니다.


【 질문 】 - ID 조정인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추천을 받아 차이나는 클라스를 애청하고 있는 새내기 학생입니다!

방송을 보면서 그렇다면 왜 최명길은 인조반정에 참여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정확한 설명을 추가로 교수님께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최명길은 유배로 인해 인조반정에 참여한 것 같지는 않던데 그럼 어떤 구체적인 이유로 갑자기 인조반정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꼭 좀 알려주세요!!


【 답변 】 - 한명기 교수님

최명길은 1605년 과거에 합격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곧바로 벼슬에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1611년(광해군 3) 공조좌랑과 병조좌랑에 임명되면서 출세할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2년 뒤인 1613년부터 최명길의 벼슬살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해 ‘영창대군 역모사건’이 벌어졌고, 그해 11월,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됩니다. 당시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영창대군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자 그의 어머니 인목대비는 영창대군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해 12월, 명에서 사신이 입국하는데, 광해군은 ‘영창대군 사건’이 사신에게 알려지는 막기 위해 신하들에게 명 사신을 엄중히 감시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 1614년 1월 1일, 사신의 부하였던 중국인 몇 사람이 숙소를 나와 외출합니다. 당시 포도청 군사들이 그들을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어떤 조선 유생이 술에 취해 중국인들에게 접근하다가 포도청 군사들에게 붙잡아 끌려갑니다. 그런데 당시 당직을 서고 있던 병조좌랑 최명길은 중국인과 접촉했던 유생을 석방해 버립니다. 술에 취해 중국인에게 접근한 것이 별것 아니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광해군은 격노했고, 친히 최명길을 심문했고, 며칠 뒤 최명길의 벼슬을 삭탈하고 도성 밖으로 쫓아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명길은 광해군 조정에서 짧은 관직 생활을 끝내고 대성리로 떠나게 됩니다.


한편 최명길이 쫓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북파는 영창대군을 살해했고, 그 때문에 인목대비의 광해군과 대북파에 대한 원한은 극에 이릅니다. 급기야 대북파는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기 위해 이른바 폐모(廢母) 논의를 주도하면서 광해군 대 정국은 요동칩니다. 이후 광해군이 대북파의 주장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하려고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반대하던 서인과 남인들은 ‘불충한 무리’로 낙인찍혀 조정에서 제거됩니다. 서인과 남인 등 정권의 비판 세력이 제거된 이후 대북파는 ‘광해군을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마구 휘둘러 온갖 비리와 부정을 자행하고, 그 와중에 광해군은 궁궐을 새로 짓는 토목공사에 몰두하여 민생이 피폐해지고 국가의 기강이 무너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해군의 난정이 점점 도를 더해 가고 있던 상황을 목격했던 최명길은 162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인조반정의 거사 모의에 가담하게 됩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상세히 알고 싶으면 『최명길 평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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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질문이 채택된 분께는 응모 시 기재된 연락처로 한 달 이내 상품이 발송될 예정입니다.

(배송 정보 오기재 및 받으시는 분의 부주의로 인해 반송된 경품은 재발송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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