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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강 신병주 교수] cherbourg00 님 질문 - 사초는 제대로 작성되었나?

2018-11-12 PM 5:38:23 조회 561


ID cherbourg00 님의 질문에 대한 강연자 신병주 교수 님의 응답입니다.



【 질문 】 - cherbourg00 님


사관을 죽이고 사초 작성 등 기록물에 지나치게 개입하였다고 하는데, 그 시대의 기록이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궁금하고 다른 왕들도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런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면 사초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역사에 무지하지만 신 교수님의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을 읽고 난 후부터 조선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반정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니 초기에 폭정을 제어할 시스템이나 뭐 이런 거는 전혀 없었는지 답답합니다.


【 답변 】 - 신병주 교수


연산군 시대에 『성종실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사초(史草)의 일부가 노출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난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연산군 시대가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선시대 왕은 왕의 사후에 실록을 편찬하는 전통을 지켰습니다. 태종이나 세종도 전왕의 사초를 보고 싶어 했지만 신하들이 강력히 반대하자, 이를 그만둔 상황이 실록에 실려 있습니다.


실록은 왕의 사후에 작성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사초를 작성하는 사관이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왕의 사후에 실록청이 구성되는데, 이때 왕의 재위 기간 중에 사관(史官)들이 작성한 사초(사초는 처음 작성하는 초초, 교정을 한 중초, 실록에 최종적으로 기록되는 정초의 세 단계를 거침) 중에서 꼭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여 실록의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사초 이외에 관청의 업무 일지에 해당하는 시정기(時政記)의 주요 내용도 실록의 기록으로 남겼는데, 실록이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된 것에는 사초 이외에 시정기의 기록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실록은 당대 왕들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에 대해 사관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매우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실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자료적 가치가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언론 삼사로 지칭하면서 왕권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이외에 경연을 활성화하여 왕이 신하들과 학문 토론을 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많은 의견을 듣도록 하는 시스템을 완비했습니다. 사관들이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것도 왕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제도들이 있어도 연산군처럼 모든 시스템을 무시하고 독재 군주의 길을 걷는 왕에게는 허사였습니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폭정을 휘두르는 왕에 대해, 조선 시대판 탄핵이라 할 수 있는 ‘반정’의 길을 간 것은 독재자를 제어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습니다. 중종반정의 경험은 신하들의 힘으로 폭정을 제어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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