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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강 전호근 교수] shb221 님 질문 - 나치에 가담했던 자들은 어떻게 생각...

2018-11-28 PM 3:01:21 조회 201

ID shb221 님의 질문에 대한 강연자 전호근 교수 님의 응답입니다.


【 질문 】 - shb221 님


어제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하신 선생님의 강연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의 위기를 보고 도우려는 본능적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측은지심이라고 하신 성선설과 본래 이기적이고 냉정한 마음을 가진 게 인간이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교육을 받아 좋은 사람이 되는 성악설의 차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을 들으니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관한 얘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시겠지만, 2차 대전 종전 후에 모사드에 체포당해 전범 재판에 세워진 아이히만을 보고 쓰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기사인데요. 자신은 어디까지나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업무를 맡아서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아이히만. 아이히만의 그 간단한 말에서 드러난 600만이라는 아무 죄 없는 목숨이 죽어가야 했던 것에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저 누가 죽든 말든 명령은 수행되어야 한다며 자신은 명백한 무죄라고 주장하는 그 무심함과 냉정함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생각할 마음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무능함을 반면교사 삼아 한나 아렌트가 인간이 인간으로 불리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인데, 스스로 그 능력을 저버린 자는 저렇게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짓을 저지르며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조차 못 하고 결국 惡이 된다는, 누구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항상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설파하는 내용입니다.


누구나 선한 본능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만 나치주의자들은 그 본능을 없애버리고 살았고, 누구나 받는 기본적인 교육은 받았겠지만 집단이기주의와 정치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오직 탐욕에만 눈이 멀었던 그들은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니고, 대체 어떤 종류의 종족인 것인가요? 그런 자들의 정신 상태는 대체 어떻게 분류해야 하나요?



【 답변 】 - 전호근 교수


세상을 향한 고민과 내면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훌륭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많을수록 세상이 더 나은 쪽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아무리 본성이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구조적인 악 속에 던져지면 오히려 악인보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의 경우에서처럼 겉으로는 악인으로 보이지 않는 자의 악행이 종종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경우를 두고 ‘악의 평범성’ 또는 ‘진부성’이라 했지만 저는 ‘선한 자의 악행’이라 부릅니다. 선한 자가 악한 구조 속에서 일하게 되면 개인적으로는 선하더라도 결국 악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성실하게 일할수록 구조적인 악을 강화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맹자의 성선설이 도움이 됩니다. 맹자가 이야기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타인의 처지에 놓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습니다. 아렌트가 지적했듯이 아이히만은 자신을 타인의 처지에 놓을 줄 아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스스로 납득하지조차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악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자가 악의 근거로 제시한 ‘인간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라는 명제는 그 자체가 선이나 악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하거나 그런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 차원의 악으로 본 것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직관적 통찰보다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했을 때 사회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야기했느냐를 기준으로 악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직관적 통찰을 근거로 삼는 맹자의 성선설이 놓치기 쉬운 구조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적시함으로써 개인의 악행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제 강연 내용 중에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라도 지배 논리로 이용되면 결국 지배자의 배만 불린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또 내가 선한지 악한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타고난 본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조건도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야 합니다. 만약 내 앞에 있는 자가 폭력배고 내 뒤에 있는 자도 폭력배라면 스스로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하더라도 결국 폭력배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는 폭력의 하수인일 뿐입니다. 아이히만의 경우 불행히도 앞과 뒤에 모두 나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어떤 일을 했건, 얼마나 성실했건, 본성이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그저 나치였을 뿐입니다.


좋은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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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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