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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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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강 신동흔 교수] kwkim0920님 질문 - 현대 삶에서 이야기의 힘의 가치

2019-01-14 PM 1:58:01 조회 430

ID kwkim0920님의 질문에 대한

강연자 신동흔 교수님의 응답입니다.




【 질문 】 - ID kwkim0920님


신동흔 교수님

안녕하세요. 최근 JTBC 차이나는 클라스를 즐겨 시청하는 28살 사회 초년생입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이야기하신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최근 들어 회의감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회의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제 환경부터 짤막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어 책(주로 소설)을 많이 읽어왔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형태와 장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만화에서 소설, 장르문학에서 고전문학까지 견문을 넓혀가고, 책이 주는 삶의 진리와 의미를 매번 새롭게 찾으며 자극 받아왔기 때문에, '책'과 '이야기'를 매우 신성시해왔습니다.

그러나 필 아소프의 '지식의 범람'이라는 말에서, 책의 지식은 위대하나, 경험보다 더한 것은 없다라는 말을 최근 들어 뼈저리게 느끼는 중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힘들 때마다 독서를 하며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이야기들로 제 삶을 위로해왔었으나,

사회로 나가게 되면서 피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들을 눈앞에서 보게 되고, 스스로가 아닌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고통도 책이나 이야기들로 위로하기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모든 것들이 '경험'이라는 윗사람의 논리에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경험 또한 이야기겠죠. 누군가가 아닌, 그 세대 사람들이 겪은 공통된 가치관이 나타나는 이야기로요. 하지만 그게 과연 옳기만 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그들의 편의대로 이용하기 위한 이야기일까요?

저도 교수님이 주장하신대로, 물신의 시대에서 인문학은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진리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투쟁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현실적인 벽들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것들과 직접 맞서 싸우기에는 제가 가진 것들이 너무나 약하고, 가면을 쓰고 연기하기에는 제 가치관과 자아에 균열을 일으켜 버립니다.

서로가 대화를 하며 인정을 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이 시대의 인정욕구는 SNS로 간이 해결되어 버립니다. 거짓된 모습과 이야기들로 점철된 것들에 인정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점점 더 변질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인생에 몇 번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어떤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그런 순간. 교수님께서 뜻 깊은 말씀 해주신다면, 제 삶의 이정표를 다질 때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변 】 - 신동흔 교수


안녕하세요. 신동흔입니다. 관심과 질문 감사합니다.

올리신 글을 읽다가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한편으로 말이 갖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말씀대로 문학은 상상적 허구의 세계입니다. 특히 신화나 민담 같은 옛이야기는 더욱 그러하지요. 경험적 현실과는 다른 환상적인 내용이 가득합니다.

옛날이야기의 내용을 보자면, 선의와 긍정으로 움직이면 행복한 삶과 해피엔딩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그런 환상을 갖기 쉬워요.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서운 현실과 부딪혀 고난을 겪게 되면 이야기가 전한 교훈이 다 거짓되고 허망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게 됩니다. kwkim0920님께서도 그런 상황에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요즈음 청년들이 대면하는 현실이 워낙 냉엄하다 보니 더욱 그럴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라고 하면 정말 화가 나는 일이 되겠지요. 이야기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고요.

kwkim0920님의 회의에 대한 저의 답은 이야기와 문학이 비록 허구이지만 그 속에 잔혹할 정도의 냉엄한 현실이 여지없이 반영된다는 것이고 또 그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해법이 함께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주인공들이 현실의 장벽에 어떻게 부딪혀 쓰러지고 또 일어나 맞서면서 돌파해 갔는지를 눈여겨보시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SNS를 말씀하셨지요. 저도 한때 SNS에 빠져서 헤맨 많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좋아요’와 상찬의 댓글을 통해 인정욕구를 채우곤 했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십중팔구 거품이고 판타지였습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일시적 위안을 주는 마약과 같은 것이었지요. 스스로 ‘빨간 모자’가 되어 ‘자기도취’라는 꽃을 따다가 길을 잃고 있음을 깨닫고 SNS를 걷어치웠어요. 지금도 저는 그것이 좋은 답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전해온 이야기들은 다릅니다. 제가 보는 수많은 옛이야기 속의 해피엔딩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진 허튼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다 그럴 만한 과정을 거쳐 행복에 도달합니다. 평생을 ‘바보’나 ‘찬밥’ 취급을 받으며 편견과 조롱, 또는 폭력과 억압 속에 지내면서도 희망과 소신을 내려놓지 않고서 제 할 일을 다 하면서 정도(正道)로 한 걸음씩 나아온 결과가 해피엔딩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장은 답답하고 캄캄한 절망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믿음으로 꾸준히 나아간 결과로 터널이 끝나듯 행복이 열리는 것이지요.

방송에서 다룬 ‘콩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콩쥐가 처한 현실은 얼마나 어렵고 차가웠던 것인지요. 힘이 돼야 할 가족(엄마와 동생)이 잔인하고 가혹한 적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이었어요. 아버지 또한 무관심 속에 딸을 방치했고요. 그 상황에서 1년 365일 험한 고생의 시간들을 홀로 외롭게 감당해야 했던 것이 콩쥐의 삶이었지요. 만약 거기서 좌절하고 포기했다면 그대로 끝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콩쥐는 그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면서 힘을 냈습니다. 마음속의 어머니를 믿으며, 또 하늘을 믿으며 언젠가 찾아올 새로운 날을 향해 한 걸음씩 움직여 갔지요. 그 결과로 콩쥐는 어둠의 터널을 헤쳐나가 빛나는 자기 삶을 이루어낸 것이었습니다.

콩쥐가 원님을 만나서 결혼했다는 것은 설화적 허구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극단의 소외와 고난을 끝까지 돌파함으로써 결국 희망을 찾아낸 것은 실제적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꼭 ‘원님’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녀는 결국 자기를 알아주는 좋은 짝을 만나서 빛나는 삶을 살게 되었으리라고 믿어요. 그 마음속 깊은 곳에 어린 시절의 상처가 그림자처럼 남아있었다고 해도 말이지요. (물론 그러한 만남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능력과 진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요. 콩쥐는, 또는 신데렐라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옛날이야기는, 또는 세상의 수많은 고전은 “희망은 없다!”라고, 또는 “현실은 지옥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가장 위험시하고 경계합니다. 그렇게 믿는 순간 정말로 희망은 사라지고 현실은 지옥처럼 될 수 있거든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사라져버리면서 무력감과 절망감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렇게 좌절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문학 속에는 얼마든지 많이 있지요. 아무쪼록 그런 서사로 나아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말이 너무 교과서적이고 교훈적이라고 생각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번 믿어주시면 좋겠어요. 저 또한 잿빛 가득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고 감당 못할 빚 속에 무너져버릴 것 같았던 긴 날들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관계의 위기도 많이 겪었고요. 그래도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걸어 나온 결과로 그런 상황을 헤쳐올 수 있었습니다. 그 길에 이야기와 문학이 큰 힘이 되어주었지요.

말이 좀 길어졌네요. 옛날이야기를 보실 때 주인공이 도달한 ‘행복한 결말’만 보지 말고,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만들어냈는지, 그 동인은 무엇이고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깊게 통찰해 보세요. 분명 옛이야기 속에 kwkim0920님과 비슷한 문제상황을 겪는 주인공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그 상황을 헤쳐나간 과정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방송에서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림형제 민담의 <두 나그네>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늘 긍정과 낙관으로 움직였던 재봉사는 간악하고 냉정한 현실을 상징하는 잔혹한 구두장이한테 잘못 걸려서 두 눈을 잃은 채 교수대 밑에 버려지고 맙니다. 끝장처럼 보이는 그 상황에서 재봉사는 교수대에 내걸린 시체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서, 그리고 교수대에서 떨어진 이슬(저는 그게 핏방울이라고 생각해요)로 눈을 적시고서 새 희망을 찾아 일어납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일어날 힘은 늘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가 전해주는 삶의 진실이지요. 절망적 현실을 경험하는 분들한테 제가 자주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올리신 글을 보면서 kwkim0920님이 참 순수하고 바르신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딱 왔었어요. 그런 분들일수록 냉엄한 현실 앞에서 더 큰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기 쉽지요. 돌파해서 이겨나가시면 좋겠습니다. 그에 필요한 힘을 이야기와 문학에서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분명히 길이 있다고 하는 저의 말씀을 믿어 주세요. 필요하면 다시 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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