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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강 유명순 교수] 권미숙님 질문 - 분의 시대적 차이에 대해 여쭙니다

2019-06-03 PM 4:00:59 조회 565

ID 권미숙님의 질문에 대한

강연자 유명순 교수님의 응답입니다.




【 질문 】 - ID 권미숙님


유명순 교수님 차이나는 클래스에서 좋은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울분을 소재로 한 기사의 증가 추이를 연도별로 나타냈을 때,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진 최근 더 높아진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학습의 기회도 많지 않고 공평함이 지금보다 못했던, 제약이 많았던 시대에는 과연 잠재 울분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는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세대입니다. 심하게 자유가 억압되던 시대입니다. 또 다수가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시대이죠. 그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하십니다. 나름 불공평이 무엇이고,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를 배운 저희 세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 되겠죠.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이 시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울분은 불공평, 무효화라는 것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이기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오는 것도 많은 건 아닌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과연 과거의 사회구조, 권력은 지금보다 정의로웠을까요..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는 세대들이 조금의 불편함도, 조금의 잔소리, 잠시의 무시 당함 등도 예전의 세대보다는 참을성 없이 울분이라는 모양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조차도 방송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욱하는 감정 자주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당하고 따지지 않는 건은 바보라는 인식이 즉각의 감정 표출을 강요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가장 좋은 예로 요즘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어딨냐라는 말인 것 같아요..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저 스스로도 돌아보게 되고 시대적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제 주변인들도 꼭 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안타까운 것은 생각보다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거네요^^





【 답변 】 - 유명순 교수


따뜻한 시청 후기와 예리하고 중요한 질문에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거의 대부분은 실제로 저희 연구진이 고민하고 연구로 구상하고 있는 내용이고, 특히나 <시간성과 울분의 의미>는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루고 있기에 반갑기도 합니다. 앞으로 저희들의 연구를 기대하고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일단 이번에는 방송에서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 그 표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1990~2018년 동안의 신문 지면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이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울분을 다룬 기사가, 다시 말해 그만큼 울분의 사안과 그것의 공유가 상당히 늘어났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방송에서는 수의 증가에 초점을 두고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사실 저희들 연구진은 그 기사들의 내용과 주제까지 분석했습니다. ‘울분의 의미’ 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지요.

9천 개가 넘는 일간지 기사 내용을 1990~2018년이란 기간에 걸쳐 통계적 기법을 적용하여 “누가 무엇에 관해 울분해왔는가?”를 초점으로 분석한 결과를 아주 단순화하여 말씀 드리면 대략 2010년을 기점으로 전후의 의미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전 시기 울분은 정치적인 불의(political injustice)에 해당하는 사안들이 빈번히 등장했는데, 민족, 외교, 국내정치 갈등, 민주화 등이 주요한 울분 유발의 상황이나 맥락이었고, 구체적으로는 광주, 제주, 일본 식민지 등 한국 근대와 현대사의 아픔들이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를 통해서 울분과 동반 출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2010년 이후에 접어들면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울분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의 국가가 공정, 공평하지 못하여 다시 말해 사회정책과 제도의 결함과 미비가 일으킨 개인의 비극과 그 비극을 당한 피해자들이 국가와 사회를 향해 표출하는 분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안전, 보건, 환경을 망라하며 벌어진 다수의 연속된 사회적 참사들과 국가재난에 해당하는 지진, 화재 같은 일들이 사회적인 울분 유발의 중요 사례들로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책임자 처벌이나 피해보상의 문제들, 피해자의 사회적 고립과 편견의 문제들이 울분과 동시에 출현하고 있었습니다. 또하나의 특징으로 후기의 울분은 고용과 근로조건 같은 분배와 절차 공정성에 관련된 갈등을 통해서도 동반 출현이 높았습니다. 이를 아울러 저희 연구진은 후기의 울분은 보다 사회 공정성이나 공공성 (social fairness and system accountability) 에 가깝지 않은가 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시대를 말씀하셨지만 제가 파악하기로는 시청자님의 말씀에서는 “세대”가 읽히는데, 세대별로 공정함에 대한 기대가 다를 수 있고, 이것이 울분 경험 자체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다만 저 한 사람의 개인적인 동의가 아닌, 이런 점을 정교하게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를 제시하려면 개인/집단 특성과 정치사회적 조건들의 영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난 뒤라야 할 텐데 앞으로 연구가 더 쌓이고 깊어져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조금 더 내실 있는 답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한편,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의 울분과 현재의 울분에 관련된 말씀은 한과 화병과 연결하여 의견을 내 보겠습니다. 저 스스로는 한과 울분은 서로 관통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이 보다 더 집단정서에 가깝다면 울분이 인지적 감정이고 (자기든 사회든 이를 향하는)행동지향적인 면이 있다는 점에서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저는 노예제도가 존재할 때에도 울분은 존재했다는 입장인데, 다만 그때는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서 한의 개념과 잘 맞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즉, ‘억울하다’ ‘부당하다’는 분노 감정보다 ‘서러움’에 가까운 정서로 더 잘 이해된다고 생각합니다.

울분은 해결을 요구하지만 한은 승화로 연결되는 점도 고려해 볼만한 것 같습니다.

또한, 고부갈등이라는 아주 오래된 사회관계의 갈등을 예로 들면, 과거의 고부갈등은 ‘아이고 서러운 내 팔자야’ ‘참는 수밖에...’식으로 감정억압과 신체화 (화끈거림, 가슴 두근거림, 수면장애 등)를 동반하는 ‘화병’ 으로 발현되었다면 현재의 고부갈등은 ‘왜 같이 일하는데 아들이 아니라 딸이 아니라 며느리라고 해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이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로, 즉 울분으로 더 잘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해석을 해본다면, 사람에게 정신심리적 불편과 어려움을 초래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지속되는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존재했지만, 과거에는 가족, 마을, 지역 사회에 유대와 사회적 자본이 지금보다 풍부한 편이었고 교육의 가치도 명목적으로 인격과 공동선의 실현을 지향했다면 현재는 교육 자체가 명목적으로도 출세를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 승자독식의 파괴적인 경쟁문화가 사회의 지배적인 마음의 구조로 작용한다는 것이 유사한 문제 상황에 대해 그때와 다른 반응으로 나타나는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이는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사회가 이기적이 되어”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진심으로 현재 우리 사회의 교육과 경쟁 구조 개선이 절시하고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교육이 학교 교육만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비해 교육이 갖는 역할이나 기능은 비단 공식적인 학교만이 아니라, 미디어와 기타 문화 산업으로 많이 이양되었습니다. 그만큼 미디어와 문화와 규범 구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로 어떤 의미들을 전달하고 있는지, 거기서 청소년부터 많은 사람들이 어떤 습속과 정서와 감정을 경험하고 공유, 확산하고 있을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함께 숙의하며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 김상용은 1939년 시에서 왜 사냐건 웃지요. 라며 자조와 자족을 삶에서 담아냈는데 2019년 우리 중 누군가 그렇게 답한다면, 어떤 식으로 이해할까 스스로 반문해 보는 때가 있스빈다. 저 사람 지금 제정신인가? 하고 정신상태를 의심하거나, 지금 밖은 전쟁인데,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려고 애를 써도 모자랄 판에 뭐하자는 것이냐? 혀를 차거나 왜 살긴, 잘 먹고 잘 살아야 사는 게 의미가 있지, 하게 되지 않을까 싶고, 혼자의 자문자답에 씁쓸하면서도 마음이 아파오는 점이 있습니다. 답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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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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