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님의 질문에 대한 강연자 김이재 교수 님의 응답입니다.

【 질문 】 - ID 유정

안녕하세요 저는 문과를 졸업한 취업준비생입니다. 교수님 강의 정말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제가 현재 알고 있는 지도가 18세기 영국식 지도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교수님 강의를 통해 지루할 수도 있는 지리학을 재밌게,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관심 없었는데 지도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저도 지도가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봤는데 없더라구요 ㅜㅜ 혹시 저같은 평범한 사람이 지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또한 지도 관련한 서적을 추천해 주실수 있나요??

【 답변 】 - 김이재 교수

국내에도 지리를 이용해 큰 업적을 세웠거나 위기를 탈출한 인물이 많았습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왕들이나 군사 지도자들은 모두 지도를 잘 읽고 지리적 상상력이 풍부한 분들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셨죠. 조수간만의 차를 활용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군사와 배를 보유한 왜적을 무찌르시는 등 ‘바다의 지리’에 능하셨지요.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신 김구 선생님 역시 청년기 세계지리 서적을 탐독하며 지리적 상상력을 기르고 국내 여러 지역을 답사하며 독립운동 지원 세력을 연계시키는 등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도를 펼치고 돌파구를 찾으셨습니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 정부를 세웠고, 중국 내부에서도 계속 임시정부 근거지를 옮기며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외교적 해법을 강구하셨으니 지리를 활용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 역시 군사 지휘관으로서 중국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친 후, 고향 완도에 돌아와 청해진을 설치해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신라 사회의 혼란과 모순을 목격한 장보고는 골품제도 하에서 신분 상승이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지도를 들고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20대 초반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꿈을 키운 기회의 땅, 당(唐)으로 간 장보고는 서주(徐州)의 무령군(武寧軍)이라는 군대에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30세(819년)에 병사 약 천여 명을 거느리는 군중소장(軍中小將)의 직위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이후 장보고가 산동반도 적산포에 세운 법화원은 당나라에 사는 신라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는데요, 장사와 구법을 위해 신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정보를 교환했고 항해를 떠나기 전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장소였습니다. 장보고의 땀과 노력으로 일군 법화원은 당나라에 사는 신라사람들의 꿈과 희망의 중심지였던 셈입니다.

9세기 동아시아의 바다에는 해적이 자주 출몰했는데, 해적들은 신라인을 잡아다가 노비로 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참한 신라 노비들의 실상을 알고 이들을 구할 방도를 찾던 장보고는 귀국을 결심합니다. 흥덕왕을 알현해 청해진을 설치하고 군사 1만을 얻은 장보고가 해적들을 소탕하자, 동아시아의 바다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념으로 매진한 장보고는 청해진 본영을 중심으로 한/중/일을 잇는 장대한 해상항로를 개척하는 위업을 달성합니다. 이후 중계무역을 통해 부를 창출한 장보고는 이슬람 세계와도 교역한 아시아 최초의 민간기업인이라고 평가되니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대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커넥토그래피 강국이 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두루 갖추었습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5G를 상용화시킨 나라이기도 하고 반도체 및 스마트폰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IT 강국이기도 하지요. BTS는 커넥토그래피 시대의 슈퍼스타인데요, SNS를 통해 자신들의 팬들과 소통하고 전 세계에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지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하고 커넥토그래피 강국이 되어 번영하려면 원천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적용하고 연계하는 플랫폼 확장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아쉽게도 한국은 기술 강국이긴 하지만 편협한 사고과 각종 규제로 인해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되어 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싱가포르는 4차 산업혁명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나라, 커넥토그래피 강국으로 꼽히고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역시 젊은 인구가 많고 미래가 밝은 나라에 꼽힙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신남방정책 대상 지역이기도 한 인도 및 아세안을 중심으로 4차산업혁명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아세안 국가 간 연계성이 강화되고 글로벌 경제에 빠르게 편입되면서 IT 기술이 바꾸는 생활의 변화가 눈부신 상황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제대로 세계지리를 배우지 못하고 우리의 관심과 상상력이 지나치게 국내에 갇혀 있다 보니 한국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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