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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종영 https://tv.jtbc.co.kr/docu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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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 다시 부모의 이름으로 묻는다 1부

동영상 FAQ

2014.07.09 (Wed) 19:55 방송
<부제 : 다큐쇼 23회>

476명의 승객 중 사고 직후 구조된 172명 외에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었다.
304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된 세월호 침몰.
믿을 수 없는 참사로부터 80여 일이 지났다.
7월 24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100일.

유가족들은 가슴을 치며 우리에게 물었다.
대체 왜 아이들을 잃어야 했는지, 어떻게 단 1명도 구해내지 못한 것인지.
그건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큐쇼 24화 <도대체 왜? - 다시 부모의 이름으로 묻는다 1부> 편에서는
유가족들이 직접 묻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의문점들을 통해
이 참사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어 보려 한다.


▶ 열여덟 살, 설렘 가득했던 수학여행 길
수빈이에게는 생애 첫 수학여행이었다. 평소 과묵했던 아들이었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의 도움도 마다하고 스스로 짐을 꾸렸던 그 날
들뜬 수빈이의 얼굴을 엄마는 잊지 못한다.
혜선이는 분홍색 캐리어를 새로 샀다. 언니가 사준 새 옷을 예쁘게 접어 넣고
웃던 딸의 모습이 엄마 눈에 선하다.
세월호에 탔던 모든 이들이 고대했던 4월 16일이다.
내일이면 따뜻한 제주의 바람을 쐴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밤 불꽃놀이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다음날 누구도 그 섬에 닿지 못했다.

▶ 왜 세월호는 급격히 방향을 틀었나?
유가족들이 품은 첫 번째 의문. 9시 48분 세월호의 급격한 변침.
당시 세월호가 지나던 맹골수도는 물살이 계곡처럼 빠르고 방향이 자주 바뀌어, 항상 조심해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레이더에 잡힌 세월호는 무려 반 바퀴가 넘는 회전을 하더니, 이내 속도가 떨어지면서 표류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급격한 회전을 하면서 배가 기울어진 뒤, 다시 균형을 잡지 못해 그대로 침몰을 시작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렇다면 조타수는 왜 하필 위험하다는 맹골수도에서, 말도 안 되는 각도로 급격히 방향을 바꾼 것일까?

▶ 왜 골든타임을 놓쳤는가?
- 왜 해경은 선장부터 구조했는가?
배는 침몰을 시작했다. 사고 접수 후, 목포해경 123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것은 16일 오전 9시 35분. 구조를 시작해야할 다급한 순간에 도착 후 거리를 둔 채 지켜보고 있던 목포 123정! 그리고 세월호에 접안을 하고 가장 먼저 구출해 낸 것은 세월호에서 가장 나중에 내려야했던 선원들이었다.
같은 시각, 선실에서 아이들은 헬기소리를 들으며 곧 구조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9시 46분, 배의 책임자였던 선장까지 목포123정으로 탈출한다.

- 왜 해경은 유리창을 깨지 않았는가?
“해경이 옆에 있다고 표현을 했어요.
힘들었겠지만 깰 수 있었을 텐데 보는 애를 놓아두고, 그냥 저버리고 왔는지...”

세월호를 맴돌던 해경의 구조정 옆으로 보인 수많은 유리창을 보면 누구나 가졌을 의문점.
해경의 경비정에 유리창을 깰 수 있을 만한 장비가 없었던 것일까? 만약 그 정도의 장비도 구비되어있지 않다면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경비정이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손이 다치더라도 유리창만 깨졌더라면 수많은 이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을까.

- 왜 선장은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아이들이 찍었던 동영상에서 쉴 새 없이 들리던 ‘가만히 있으라, 제자리를 지켜라’라는 방송. 두려움 속에서도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르며 구조를 기다리던 착한 아이들. 부모들은 그 영상을 보며 가슴을 쳤다.
조사 결과, 선내에 가만 있으라 방송을 지시한 것은 이준석 선장으로 밝혀졌다. 모든 승객들이 한 번에 이동하면 오히려 더 위험할까봐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는데. 그러나 이준석 선장은 공판준비기일 중에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번복했다. ‘나는 퇴선을 명령했다’는 것! 대체 그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 왜 민간잠수부의 투입을 저지했는가?
생때같은 자식을 차가운 바닷물 속에 넣어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애끓던 부모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민간잠수부였다. 하지만 민간잠수부의 투입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저지당하고 있었다.
골든타임이었던 1시간, 반나절, 하루가 지나도록 달라지는 상황은 없었다. 대체 아이들의 목숨과 맞바꿀 어떤 중대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사건 발생 둘째 날 17일 오전 7시 50분, 한 업체가 입수를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구조가 진행 될 꺼라 희망에 찼던 유가족들은 곧 무너지고 말았다. 구조업체인줄 알았던 ‘언딘’이 선체를 인양하기 위해 달려온 구난업체였던 것. 유가족들은 정부와 언딘은 어떤 관계이기에 민간잠수부 투입까지 막으며 시간을 지체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전문의라고 알고 기대를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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