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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강 박상진 교수] 차이나는클래스 별을따라서

2021-01-18 PM 5:39:21 조회 247

【질문】  a*****7 


박상진 교수님의 강의 너무나 재미 있었습니다  40여년 조직이라는 틀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지내온 여러가지 생활과 주변의  모습들이 단테가 살았던 시대와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이시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것인가  여러가지 생각과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하는가를 다시 생각 해 보게 되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박상진교수님께 질운도 드리고 싶습니다

단테의 신곡이 돌아가지 못한 피렌체 사람들에게는 얼아만큼의 영향이 있었는지가 궁금하네요~~


【답변】 박상진 교수님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뒤에 떠돌아다니면서 <신곡>을 썼고 거의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곡>을 완성해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지옥', '연옥', '천국' 순으로 집필하는 동시에 퍼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전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주로 필사본을 통해 유통되었습니다. 필사본은 너무나 비싸고 희귀한 것이었기에 필사본을 통해 <신곡>을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것입니다., 또 문맹률이 워낙 높았던 것도 필사본을 통해 <신곡>을 읽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이유가 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곡>은 매우 널리 퍼져나갔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구술과 낭송을 통해서였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신곡>을 썼던 단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신곡>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문자로 쓰인 책보다는 구술과 낭송을 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신곡>을 썼습니다. 운율과 리듬을 중시한 것도 그때문이지요. 역사가 브르크하르트는 당시에 소몰이꾼도 <신곡>을 흥얼거렸다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을 '독자'로 두고자 했던 단테의 목표는 충분히 실현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공식 언어였던 라틴어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역언어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라틴어는 배워서 알게 되는 학습언어인 반면, 지역언어는 태어나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모어입니다. 즉,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제한된 반면, 지역연어는 누구나 할 수 있었지요. 단, 지역언어를 한다는 것은 문자로 읽기보다는 말하고 듣는 구술의 형태였습니다. 라틴어는 문자로, 지역언어는 소리로 소통되었던 것이지요. 지역언어의 선택은 당시 획기적이었습니다. 당시 시회주도층이 그러했듯, 단테는 고대로마제국과 중세 기독교 체제에서 자신의 지식과 세계관, 그리고 그것들을 전달할 언어를 가져왔습니다. 단테는 <신곡>을 그런 배경에서 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곡>에 담긴 그 웅장한 주제와 미려한 문체를 라틴어가 아니라 지역언어에 담겠다고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신곡>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역언어라고 한다면, 당시 이탈리아 반도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지역들에서 사용되던 언어를 가리킵니다. 단테는 망명 이전에도 자기가 태어나고 성장한 피렌체의 언어로 창작을 했고, 더욱이 망명 동안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언어(사투리)들을 직접 채집하며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이론서를 쓰면서 이탈리아를 대표할 언어로서 피렌체어가 가장 우수하고 적절하다는 탄탄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와 함께 <신곡> 창작을 통해 그 점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지요. <신곡>의 주제나 언어가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그만큼 영향력이 컸기에, 피렌체어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국가가 1860년에 세워진 것을 생각하면, 이탈리아어는 그보다 600년 전에 성립된 것이지요. 그렇기에 단테는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발명'까지는 아니어도, 단테는 이탈리아어를 결정하고 확립했던 것이지요. 또 세종이 '훈민정음해례'를 이론서로 하고,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으로 한글 사용의 문학적 예를 보인 것처럼, 단테도 <속어론>이라는 이론서를 쓰고, <신곡>이라는 이탈리아어 사용의 문학적 예를 보인 것은 참 흥미로운 유사성입니다. 언어의 완전성은 문학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전반적인 정황은 피렌체 사람들도 고스란히 경험하고 인정했을 것입니다. 피렌체에도 당연히 <신곡>은 필사본으로든, 구술과 낭송으로든, 널리 퍼졌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사용하는 피렌체어로 되어있으니, 더욱 공감과 이해의 정도가 높았을 것입니다. 피렌체인들은 단테를 피렌체가 낳은 위대한 작가로 인정했습니다. 단테가 죽고 나자 곧바로 그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라벤나에 요청했고, 보카치오는 피렌체시의 요청으로 <신곡>에 대한 대중강연을 몇 차례나 수행했습니다. 단테는 정치가로서 패배했을지 몰라도, 작가로서 훨씬 더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그는 [천국] 25곡을 쓰면서 위대한 작가가 되어 자기가 세례를 받았던 산 조반니 세례당(피렌체 두오모 앞에 있습니다)으로 돌아가 월계관을 쓰리라 다짐합니다. 그렇게 그는 위대한 작가로서의 성취를 통해 <신곡>을 피렌체는 물론, 이탈리아 전체, 유럽 전체, 세계 전체를 뻗어나가게 하는 문학적 실천을 성공시켰던 것입니다. 700년이 지난 지금 피렌체의 반대편에 있는 우리까지 단테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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